우리나라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치렀는데 만약 그 당시 그 전쟁 또는 전투에서 우리나가 졌다면 우리나라가 없어졌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도 수차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대승을 거두어 나라를 구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까지 바꾸어버린 주요전투 3개를 추려서 3대 대첩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3대 대첩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3대 대첩
- 살수대첩(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수나라를 상대로 거둔 승리)
- 귀주대첩(고려의 강감찬이 거란을 상대로 거둔 승리)
- 한산도대첩(조선의 이순신이 일본 왜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
살수대첩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한 전쟁은 총 4차례로 첫째는 수나라 문제가 1차 공격에 실패하고 그 뒤 수나라 문제의 뒤를 이은 수나라 황재 양재가 즉위한 후 2~4차례 침공해 왔는데 그중 수양제가 즉위 후 고구려를 침공한 2차 전쟁에서 살수대첩이 포함됩니다.
수나라 황제 양재가 우중문을 대장군으로 하여 113만명의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요동성을 포함한 주위 성들을 함락시키고자 하였으나 고구려군의 견고한 방어로 뜻대로 되지 않자 그중 30만 5천 명을 추려내어 소위 별동대를 만들고 대장군 우중문이 별동대를 이끌고 고구려왕이 있는 평양성을 바로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별도의 보급군이 이송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이 각자 자기가 먹을 100일치 식량을 직접 가지고 이동하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식량이 너무 무거워 버리기도 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이 굼주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계속적인 전투가 어려운 상황에서 평양성이 견고하여 쉽게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는데 을지문덕이 거짓항복을 하며 이를 구실로 우중문이 철수하였습니다.
우중문이 별동대를 이끌고 철수하며 지금의 천청강인 살수를 지나게 되었고 우중문의 군대가 반쯤 건너갈 시점에 뒤에서 고구려군이 수나라 별동대를 공격하였고 수나라 별동대는 전열이 흐트러져 거의 몰살되었는데 이때 수나라의 왕인공이라는 장수가 고구려군을 막아 우중문을 겨우 살아 돌아갈 수 있었고 30만 5천의 별동대 중 2,700명 만 살아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수양제는 고구려 원정 8개월만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서 우리나라가 수나라 113만 대군을 막아낸 것은 현대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실제 치른 전쟁 중 최대 규모의 전쟁이고 살수대첩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야전으로 거둔 최대의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귀주대첩
귀주대첩은 거란이 총 3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였는데 그 중 3차 침공 시 귀주에서 벌어진 전투로서 귀주대첩에서 승리 후 향후 100년간 고려의 태평성대를 이룰 정도로 국제 정세에서 고려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전투입니다. 다.
고려에서 거란이 세운 나라인 요나라의 성종이 고려의 왕으로 허락한 목종을 이강조가 죽인 후 새로운 고려왕으로 현종을 옹립하자 이를 빌미로 고려를 고려를 침공하였는데 고려와 요나라의 25년에 걸친 전쟁의 마지막을 엄청난 승리로 장식한 전투가 귀주대첩입니다.
요나라의 성종이 소배압을 앞세워 고려를 3차 침입을 한 후 여러 차례 걸친 전투를 거치며 거란군이 퇴각을 하는데 강감찬이 다시는 고려를 넘보지 못하도록 응징코자 귀주성 앞 평원에서 거란군을 막아섰고 이때 고려와 거란은 두 개의 하천 사이에서 서로 배수진을 치고 대회전(병사들끼리 접전 벌이는 것)을 을 치렀습니다.
전투가 사직된 지 시간이 지나도 승패가 나지 않고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상태가 되었는데 그때 고려의 최정예 기마병 1만 기를 김종현 장군이 이끌고 거란군을 공격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소나기와 고려군 뒤에서 앞으로 강풍이 불어 고려군이 매우 유리한 상황으로 급반전 하여 고려군이 우세한 승기를 잡고 거란군을 몰아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거란군은 뒤로 밀리며 하천으로 몰리게 되어 갑옷과 병장기를 버리고 도망치려 하였고 이를 추격하여 1만 명 이상의 거란군을 포로로 잡거나 죽였는데 전투가 끝나자 시체가 들판을 채우고 갑옷과 병장기가 길거리에 가득 매워 수많은 노획물을 획득하였습니다.
당초 10만 대군으로 출병했던 거란군은 귀주대첩의 전투 후 살아서 돌아간 거란군은 겨우 수천에 불과했습니다.
한산도대첩
한산도 대첩 또는 한산대첩이라고 불리는 전투는 이순인이 왜적을 맞아 한산도 앞바다에서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의 판세를 바꾼 해전이자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불리는 대첩 중 하나입니다.
https://joy-jobs.tistory.com/entry/세계 3대 해전 한산대첩
한산대첩에 대해서는 아주 잘 정리한 글을 링크합니다.
2022.05.31 - [잡골] - 독도가 한국땅인 이유(일본의 주장과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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